중학교 시절이 끝나고 어느새인가 나는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친하던 사촌형도 하늘로 보내고

잘 알지도 못하는 머나먼 낯선 어딘가의 기숙사제 고등학교에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그곳에서의 생활은 

위에서는 선배들이 건방지다며 압박하고 껄렁한 반 친구들이 자기들 무시한다고 덤볐으며

학교 내에 있던 밴드 동아리는 베이스 다루는 걸 보자마자 성향이 안 맞다며 선배들에게 문전박대 당했다.

(아마도 내가 80년대 헤비메탈, 슬래시나 프로그레시브보단 일본쪽 밴드나 카시오페아를 좋아해서 그랬던 것 같다)

담임선생은 타지 출신에 맨날 수업시간에 잔다고 1학기 초반부터 사람 취급을 안 하다가

운 좋게 모의고사 성적이 매우 잘 나오자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게 역겨워져서 내가 피했다.

집에 가끔씩 전화를 해봐도 아무도 연락을 받지 않았다. 피곤하고 지쳤다.

후일 억지로 학교 부회장이라는 감투를 쓰긴 했지만 할 일이 너무도 많아 버겁고 지겨웠다.

 

울어봤자 아무도 보듬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힘들 때면 그저 웃었다.

서울의 대학교에 진학하자마자 정문에 내 이름이 들어간 현수막이 올라갔지만 더이상 내가 얽히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10년도 더 넘게 지나 부모님과 연을 끊은 나는 졸업하고 취직 후 해외를 돌아다니다 우리나라에 4년쯤 전 돌아왔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폐교되어 없어졌다.

하지만 그 동네에 지내던 사람들은 남아있었고 그들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을 우연히 서울서 만났다.

학창시절 위로부터 아래까지 다 힘들었다고 하니 당시에 나하고 친하게 지내던 그녀석이 말하길

내가 너무 자기 세계가 강해서 혼자서 학교 전체를 왕따시켰고 선배들이 내 군기를 잡아보겠다고 설치다 하도 맞은 사람이 많아서 오히려 동기나 선배들 중에 나를 건드릴 생각을 한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내가 인간 이하로 보던 담임선생은 몇 년 후에 다른 학교에 전근가서 남학생 성추행(!)으로 걸려서 잘렸고(여선생이었다)

2학년때 학교 부회장이 되면서 망해버린 밴드동아리를 혼자 살리고 난 다음부터는

다들 나를 좋게 생각해서 여자후배들에게 인기도 있었는데 무서워서 말을 못 걸었댄다

 

내 참 이런 황당할 데가.

 

다시 가 본 모교는 더이상 내가 아는 그 이름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주 약간은 예전보다 다르게 느껴지긴 했다.

오래 보지 못한 동안에 몸이 엄청나게 안 좋아진 친구들이나 학창시절 갑자기 자취를 감춘 친구들의 사정을 이제서야 알았다는 게 많이 슬펐고 최소한의 친분으로 어떻게든 챙겨줄 수도 있었던 것을 그저 외면하며 지냈던 내 무관심이 야속했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겠지만 지금이라도 약간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말하며 기차를 탔다.

비록 이제는 연고 하나 없는 동네의 동창들이지만...

다시금 되돌릴 수 있길 바란다.

 

 

'Say Say 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술통 속에 갇힌 채  (0) 2023.01.15
본가로  (0) 2022.09.16
어느 골목집  (0) 2022.06.11
파란 토마토의 비밀  (0) 2020.08.25
사랑은 핑크빛  (0) 2020.07.19
Posted by KHAI'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