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골목집

Say Say Say 2022. 6. 11. 10:26 |


아직 눈이 내린다
그녀는 목소리를 바꿔가며 말을 계속 이어갔다
창문에 걸려있는 네온사인의 받침들이 희미하다
때론 그녀의 말도 받침이 들리지 않았으나
굳이 되묻지 않았다

골목으로 지나는 사람들의 소리가 잦아질 때쯤
술이 조금 남아있는 내 잔에 술을 따르며
모두 다 떠나도 그 사람은 그러지 않을 거라 믿었단다
골목에 이십 년쯤 버티고 있으면
기억들도 다 퇴색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그녀의 말들이 내게 쌓인다
생생한 과거의 말들이 눈처럼
나는 말을 타본 적이 없지만
문득 눈 내리는 하늘 저 위
구름마다 말이 달린다고 생각했다
제자리에서 뛰는 말들
거기에 그렇게 있는 하늘
구름이 모이면, 하늘 가슴에 꽉 차면
말발굽에 부서지는 구름이 내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계속 눈이 내린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내 가슴에 서늘하게 쌓인 그녀의 눈이
그 얼굴이 기억나기도 전에 떠난 사람들
그런 구름들을 지우는 것이다

눈 내리는 날
창자처럼 긴 골목 깊숙한 곳
그 깊숙한 곳에 있는 그 밥집
가평 가는 버스를 타러 가는 길
취기가 분홍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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