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기타 이야기

Dear.. 2022. 10. 1. 23:46 |

(운좋게도 이 베이스는 아직 사진이 예전 메일주소에 남아있었다..)

 

친구들과 이런저런 합주를 하며 지내다가 그렇게 중학교 3학년쯤이 되었다. 3학년 2학기가 끝날 즈음 이유를 모른 채 저 멀리 타향으로 보내졌다. 성적상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지망했던 외국어고 전형에서 떨어졌기 때문이었으리라 예상한다. 두번째로 내가 집안에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부모님과 사이가 벌어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사촌형이 타던 오토바이를 물려받아 타고다니는 취미가 있었는데 집안에서 당연히 좋게 보지 않았고 나는 나대로 '성적만 제대로 나오면 됐지 내가 공부를 안 했냐, 사람을 패고 다녔냐? 게임 하고 만화책 보는 게 그렇게까지 큰 잘못이냐?' 며 대들었다. 당연히 지금도 나는 그걸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대충 그때부터 부모님과의 사이가 굉장히 크게 틀어졌고 그후 두 번 정도 크게 폭발했다. 컴퓨터 사용금지, 오토바이 금지에 그동안 모아뒀던 만화책이나 게임잡지를 모두 버려버렸기에 그전에 사촌형 자취방으로 미리 빼돌렸던 드림캐스트 게임기와 원래 사용하던 베이스 정도만 겨우 살려서 건져냈다.

그렇게 워크맨 하나만 달랑 들고 친구도 하나 없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으로 끌려와 기숙사라는 곳에 갇혀있자니 불만은 하루하루 늘어만 갔다. 위에선 타지역 출신이라고 찍어누르려 들고 기숙사엔 웬 멍청한 놈들이 건방지다며 3:1로 다구리를 놓으려 하길래 죄다 패줬더니 선배라는 머저리들이 불러서 코피날때까지 사람을 때리고 사감이라는 사람은 그걸 방관하는 추태에다 교사라는 사람들도 첫 수업에서 졸려서 잠시 졸았더니만 그저 첫인상 가지고 대놓고 구타를 하고 무시하니 의욕은 하루하루 떨어져만 갔다. 

 

그러다가 운좋게 1학년 1학기 첫 모의고사에서 성적이 상당히 좋게 나오자 그제서야 담임선생의 태도가 바뀌었지만 난 이미 그런 식으로 사람에 잣대를 두고 차별하려 하는 태도가 역겨운 나머지 그냥 1학년 기간은 없는 셈 치기로 하고 수업때 무시하지만 않는 태도를 유지하며 그저 공부만 했다. 그러던 와중 1학기 방학 보충수업 때 서울에서 무언가 큼지막한 택배가 취급주의 스티커를 붙인 채 나에게 배달되었다. 보낸 사람 이름을 보아하니 사촌형인지라 기대를 하며 뜯어보았더니만 긱백에 든 것은 예쁘장하게 생긴 내 페르난데스 베이스가 아닌 웬 시커멓고 처음 보는 싸구려 중 싸구려의 대명사였던 가와사미 베이스 기타가 있었다. 편지를 대충 읽어보니 지금은 힘들지만 이걸로 참아달라나...

PC통신이나 인터넷 환경에 접속할 수도 없었고, 1주에 5천원의 용돈(그중 2천원은 차비)을 받아 쪼들리며 살던 내게 이 상황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라며 사촌형에게 따지기엔 너무 힘든 환경이었다. 아니, 그럴 생각도 없이 지쳐있던 터라 차라리 이거라도 보내준 사촌형이 고마울 뿐이었다. 그나마 어쿠스틱 기타를 비롯한 악기 반입 정도까지는 허용되었기에 밴드부 합주실에 틀어박혀 그냥저냥 아무도 연주하지 않고 연주법도 몰라 풀 밴드구성을 못해서 고생하던 베이스 정도 연주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밴드부 선배들이 찬양예배(...) 백킹을 쳐달라고 했지만 성향이 맞지 않아 거절한 이후부터는 들어가지 못해 기숙사 옥상에서 잠시 머리 식히려고 연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음해 학교의 부회장이 되었고 모두 나가버린 밴드부에서 홀로 주자들을 모집해서 합주를 하곤 했다. 내게 있어서 개신교 라던가 찬양연주 같은 것은 기본밖에 할 줄 모르는 애들이 학교에서 무언가 보여주고 군림하려는 수단에 위선의 모임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중간중간 픽업이 나가거나 넥이 헤까닥 하기는 했지만 단순 합주용으로는 쓸만했다고 기억한다. 그래도, 그 시절에 이 베이스 덕분에 죽지 않고 3년 정도는 버텼다. 후일 사촌형에게 물어보니 니 베이스 돈없어서 팔았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래도 당시 완전 생초보였던 내겐 페르난데스 베이스도 과분한 악기였던 게 사실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슬프게도 부모님과 대학 진학문제로 대판 싸우고 1달정도 가출했을 적 그 베이스는 두 동강이 나서 사망했다. 3년이나 같이 했던 악기의 최후라고 생각하니 슬펐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어째어째 추가합격으로 대학엘 진학하고 나서 1학기가 끝나고 곧 입대를 해버렸고 나는 한동안 악기와 연관이 없는 세월을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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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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