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Say Say Say 2018. 4. 30. 21:36 |

축제

축제라고 하면, 내게는 잊혀지지 않는 광경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에서 축제라고 하면 각설이에 잡상인이 넘쳐나는 주차지옥 축제의 광경이 연상되지만 내 경우엔 초등학교 3학년 시절로 외할머니가 일본 분이셔서 1년에 한두번은 일본엘 갔었는데 당시 야마구치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 놀러 갔던 여름방학이다. 사실 일본 소학교 학생들이나 우리나라 초등학교 학생들이나 큰 차이가 없지만 우리나라 초등학교 학생들이 4,5학년쯤에 술담배를 배우고 화장을 해보고 하는 것과 달리 일본의 소학교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그런 것도 드물었고, 외국인이라고 크게 편견을 가지고 대해주지 않은데다 순진한 면이 있어서 같이 어울리곤 했다.

근처의 F양이라고 하는 여자 아이와 친해져서, 나와 사촌들은 매일같이 함께 놀러다녔다. F양은 한국말도 약간이나마 할 줄 알고 우리들 중에선 가장 연상이었기 때문에, 어느새인가 모두의 리더가 되었다. 적당히 구리빛인 살갗과, 조금 헐렁한 하얀 원피스였는데 얼굴은 왜인지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일본사람 치고 붙임성 좋게 생긴 얼굴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밤, 큰 축제가 있다고 하길래 우리들도 밖에 나가기로 했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로 아이들끼리는 외출할 수 없는 시간에 용돈을 받아 놀러갈 수 있다는 건, 상당한 사치와 스릴의 현장이었다.
아이들은 대개 서두를 이유도 없는데 달리곤 한다. 엄지발가락 뿌리가 아픈데도, 비치 샌들이나 슬리퍼를 타박타박 울리며 지붕이 덮여진 시장가 아케이드까지 찾아갔다. 떠들썩한 분위기에 홀리듯 빨려들어가 점점 인파 속으로 파고든다. 그런데 밀려오는 어른들에게 파묻혀 메인 스테이지도 보이지 않고, 가판대에서 무언가 사고 싶어도, 우선 일행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만으로 겨우 버텨내고 있었다. 모르는 다른 나라의 거리에서 혹시 혼자가 되어버릴 걸 생각하니 굉장히 무섭고, 불안했다.


그때 F양이 서툴지만 한국말로 ′요기!‵ 하며 점점 인파를 헤치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허둥대며 뒤를 좇아가니, 조그만 샛길로 들어간다. 몇 번인가 돌아서, 자그마한 제과점 뒤를 지나 한참을 걷다 좀전까지의 혼잡에서 해방된 우리들은, 아무튼 달렸다. 달리고 달려서 복잡한 길을 스쳐지나가니, 아까의 아케이드 맨 끝에 도착해 있었다.

′요기!‵

F양이 이끌고 온 곳은 축제의 가판대가 아니라 늘 거기에 있는 평범한 고로케 가게다. 축제가 달아오르는 걸 약간 떨어져 보면서, 이리저리 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의 아래에서 따끈따끈한 고로케를 길가에 앉아 다같이 나눠 먹었다. 그때의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고조된 기분이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좀전까지의 불안했던 느낌을 잊은 채 F양의 똑부러짐에 기대어, 모르는 거리의 뒷골목을 누볐던 경쾌한 기분이란 타국에서 온 어린아이인 내게 있어선 특별한 추억이다. 지금도 그때의 그 제과점의 무언가 굽는 듯한 달콤한 냄새와, F양의 하얀 원피스와 나를 잡아끌던 구리빛의 작고 예쁜 손이 아주 선명히 눈에 아로새겨져 있다.

요전날, 갑자기 시모노세키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일이다.
완전히 어른이 된 사촌들이 대학교 졸업반이던 날 데리고 그리운 거리를 함께 걸어 주었다. 역으로 향하는 큰길이 상당히 깔끔하게 바뀐 것과는 달리, 아케이드 쪽은 완전히 조용해져 있었다. 한낮인데도 셔터가 내려져 있는 가게도 많다. 예전에 자주 가서 합장을 하던 신사엔 여전히 까마귀가 잔뜩 있었다.

그 축젯날의 일은, 분명 나만 기억하고 있을 게 틀림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건망증 레벨 최고렙으로 인정받는 막내인 코유키쨩(은설)이 ′여기 기억나? 축제 때, 다같이 달렸던 길이잖아.‵ 하고 상점가 아케이드의 옆길을 가리키며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역시, 그날밤의 고조된 기분은 다른 모두도 마찬가지였던 걸까?
F양에 대한 걸 물어봐도 되는지 고민했다. 그러자 큰형인 야스히로(강광) 형 입에서 ′아삿치(내 일본 애칭), F양 기억나냐?‵ 하고 그 이름이 튀어나와서 놀랐다. 큰형은 클래식 기타 강사를 하고 있는데, 지금은 F양도 그 학생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제대로 들어보니,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고 생각했던 F양은 사실 나와 동갑이었던 것도 밝혀졌다!

모두를 돌봐주는 위치에 있어서인지, 완전히 연상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 난 내 기억력을 굉장히 신뢰하는 편이지만 틀릴 때도 잔뜩 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야스히로 형이 자기 휴대전화의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F양이 지하철 한 구석인 듯 보이는 곳에서 여러 사람들 앞에 앉아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얀 원피스에 밀짚모자 차림으로 신나게 우쿨레레를 치고 있었다. 핏줄이 적당히 올라와 있지만 작고 예쁜 손가락으로 신나게 우쿨레레를 연주하는 모습이 뭔가 귀여워서, 그리고 ‘얘는 역시 원피스구만.’ 하고 생각하니 기쁜 듯한 이상한 기분이 되어, 웃었다.

그 길을 다시금 걸어본다.

빵을 굽는 달콤한 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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