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기타

Dear.. 2022. 5. 25. 20:28 |

[해당 이미지는 내가 소장하던 베이스보다 훨씬 깔끔하고, 픽가드 색이 약간 더 누렇다.]

 

중학생 시절 여름방학에 밴드를 하던 사촌형과 같이 GLAY EXPO 99 공연을 우연히 보고 왔다. 일본에 거주하다가 운좋게 티켓을 3장 구했다는 사촌형네 절친의 제의에 힘입어 두어달간 신문배달과 게임CD를 팔아 모은 거금 40만원을 들여 일본 여행에 나서, 6500엔이라는 입장료에 셔틀버스 가격 왕복 900엔까지 합해 상당한 인내력을 요했지만 그것이 내 인생에서 첫 해외여행이자 생애 최초로 보았던 콘서트 라이브였다. 

라이브를 보고 나서 사촌형에게 형 나도 기타 쳐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사촌형이 눈빛이 변하면서 '니같은 겜돌이가? 기타를?' 이라는 식의 의문스러운 눈빛이 되길래 줄 4개면 그래도 처음에 하기 쉽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참 한심하게 쳐다보던 것 같았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라며 사촌형네 연습실로 오라고 했다. 사촌형은 이미 부산 일대에서 그냥저냥 알려진 스래쉬메탈 밴드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로 연습실을 장만할 정도였고 개중 형의 후배들인 몇몇 형들은 내가 윈도우를 설치해주거나 게임CD를 빌려주면서 이미 많이 친해져 있었다. 베이스 치던 형도 이미 많이 친하긴 했던지라 베이스형네 집에 가서 안 쓰는 베이스 가져온 거 중에 하나 골라보래서 선택했고 당시 거금이었던 현금 5만원과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게임이나 내가 안 맞아서 안 하고 있던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정품CD와 베이스형이 좋아하던 은색의 용병이라는 잡지부록판 게임CD의 양도, 삼국지 조조전 설치 및 컴퓨터 몇년간 A/S라는 조건으로 한대 받아왔다.

 

베이스를 고를 땐 사촌형이랑 같이 가서 골랐었는데 나는 페르난데스라는 브랜드에 대해 알지 못했고 그날 봤던 베이시스트(GLAY의 지로-_-)가 다루던 베이스랑 최대한 비슷하게 생긴 걸 골랐다. 아마 내 기억으로 그 베이스 형이 보여준 게 90년대 중순에 나온 브릿지가 엄청 지저분한 베스타 재즈베이스, 당시엔 그럭저럭 얼마안된 신모델이라던 콜트 SB베이스, 80년대에 나왔다는 페르난데스 RPB베이스 이렇게 3개였던 것 같은데 개중 상태가 가장 나은 페르난데스를 고르게 되었다. 부산이 일본과 가까웠던지라 후쿠오카를 통해 일본쪽 중고악기들이 그나마 싼값에 꽤 돌아다녔는데 아마 그 베이스도 그렇게 흘러들어온 게 아닌가 생각한다. 술마시면 삼촌들 멱살까지 잡을 정도로 성격이 불같던 사촌형에게 그때부터 반쯤 맞아가면서 베이스를 배웠고, 이 베이스는 그토록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도 밴드활동에 미련이 남아 소장하다가 음악을 완전히 그만두면서 일본서 친해진 지인에게 그냥 넘겼다. 형들은 하늘 위로 갔지만 이젠 내 마음속에 살아있기에...

 

지금도 악기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처음부터 다시 하나하나 배워야겠지만 코로나 시대가 끝나면 혼자 놀기에는 재미없는 베이스라도 다시 구해서 처음부터 레슨이나마 받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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